미 국채 10년물 금리 5% 턱밑
미국 국채금리가 금융위기 직전 수준까지 상승하며 세계 금융 시장에 '고금리 충격'이 번지고 있다. 특히 이번 국채금리 상승은 미국 경제 전망 상향, 이스라엘 전쟁 지원 등 재정적자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어서 당분간 충격이 지속될 전망이다.
18일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전날 대비 5.6bp(1bp = 0.01%포인트) 오른 4.902%를 기록했다. 10년물 금리가 4.9%를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 10년물 금리는 4일 연속 올랐다. 기준금리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1bp 이하로 소폭 상승해 5.128%에 마감됐다.
단기물(2년물)보다 장기물(10년) 금리가 더 오르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준금리 상승을 우려한다기보다는 앞으로 미국 경제 호조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9월 소매판매와 산업생산 등 미국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월가 기관들은 미국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상향 조정 중이다. JP모건과 골드만삭스는 미국 3분기 GDP 성장률 전망을 기존 3.5%에서 4.3%, 기존 3.7%에서 4.0%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역시 이날 공개한 10월 베이지북을 통해 "고용시장이 여전히 뜨거운 상태"라며 미국 경제 호조를 시사했다. 연준은 "대부분 지역에서 여전히 숙련 노동자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지북은 각 지역 연준의 경제동향 의견을 취합한 보고서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8%대로 뛰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각종 장기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파급력이 크다. 모기지뉴스데일리 일간 집계에 따르면 10년물 국채금리에 주로 연동되는 미국 30년 평균 모기지금리는 이날 8%를 기록했다. 2000년 이후 2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에 따르면 주담대 금리가 상승하면서 지난주 주담대 신청지수는 전주보다 6.9% 하락한 166.9를 기록해 1995년 5월 이후 28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다. 월가에서는 경기 호조 외에 10년물 국채금리 상승의 또 다른 원인을 감안하면 당분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 미국 재정적자 확대로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국채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미 정부가 올해 들어 현재까지 발행한 국채가 역대급인 1조8000억달러에 이르고 연말까지 가면 2조달려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월가의 대체적 전망이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 전쟁 지원을 위해 1000억달러 규모의 원조 패키지 지원 예산을 의회에 요청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재정지출 전망이 높은 가운데 전쟁지원까지 가세하면 재정적자는 확대일로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블룸버그는 2008년 10월 말 10조6000억달러(약1경4000조원)였던 미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15년간 상승세를 지속해 지난 13일 기준 33조5000억달러 (약4경5000조원)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미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차이도 부담이다. 블랙록 인베스트먼트 인스티튜트는 국채금리가 이미 많이 올랐지만 투자자가 만기가 긴 채권에 더 많은 보상(기간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있어 장기물 금리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미국 10년물 국채가 장기임에도 2년물보다 금리가 낮지만 경기가 호전되는 분위기에선 역전 차이가 줄고 결국 사라져 10년물 금리는 더 오르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 국채금리 상승 전망 가운데 미국국체를 보유한 외국인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금리 변동성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힌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외국인의 8월 미국 국채 총보유액은 전달보다 0.68% 증가한 7조7070억달러(약1경449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동월 대비 약 2.8% 증가한 수치다.
한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날 미 국채금리 급상승에도 주식과 회사채 시장은 잘 버티고 있고 경제성장 측면에서 강세 신호를 뜻한다"고 분석했다.
한은 기준금리 3.5% 동결
한국은행이 6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미국 고금리 발작,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경기와 물가, 가계부채를 자극할 수 있는 경제 리스크가 동시다발적으로 닥쳤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꿈틀하는 물가와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모처럼 살아나기 시작한 실물경제가 아직은 금리 인상 충격을 감당할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셈이다. 통화 정책 변경이 어느 한쪽에는 약이 되지만 다른 한쪽에는 독이 되는 딜레마가 계속됐다.
결국 섣불리 금리를 건드리지 못하고 지난 1월 이후 내내 '방어운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일 한은 금융통화위원 6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한 배경이다.
한은은 경기 우려감을 반영해 금리를 3.5%로 묶어두면서도 '빚투(빚 내서 투자)'가 늘어 좀처럼 가계부채가 줄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강력한 구두 경고를 날리며 견제에 나섰다.
금리 동결의 최대 배경은 이제 막 살아나기 시작한 경기다. 2분기만 해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6% 늘어 1분기보다 선방했지만 민간소비, 수출 수입, 투자 등 전 부문이 뒷걸음쳤다.
하지만 3분기 들면서 경기 변곡점이 형성됐다. 8월 전산업생산이 반도체 효과에 한 달 새 2.2% 증가해 30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늘었고, 무역수지도 넉 달째 흑자가 이어져 교역 부문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고 있다. 모처럼 바닥을 짚은 경기에 금리 인상 찬물을 끼얹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날 금통위원 중 1명은 향후 3개월 간 금리를 올릴 가능성과 내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지난 8월 금통위에서는 금통위원 6명 모두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 인하 가능성도 열어두자는 위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가계부채, 물가 문제에 대해서는 '매파적' 메시지를 내놓으며 진화에 나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주택가격 상승 기대감에 빚투가 늘고 있는 상황에 대해 '1%대 금리는 기대하지 말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총재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더라도 레버리지해서 하는 분이 많은데 금리가 다시 예전처럼 1%대로 떨어져 비용부담이 금방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겨고를 드리겠다"고 했다.
단시일 내에 금리가 내려가 빚투 부담이 낮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가계대출에 카드빚을 합친 가계신용은 1862조8000억원(2분기 기준)으로 전 분기 대비 9조5000억원 늘었다. 올 1분기 가계신용은 전 분기 대비 14조3000억원 줄며 주춤했지만 최근에는 고금리에도 재차 늘어나는 모습이다.
금통위는 최근 불안해진 물가도 의식했다. 9월 소비자물가는 1년 새 3.7% 올라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달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발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추가 상승압력을 받고 있다.
이 총재는 "(금통위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졌고 물가 목표 수렴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커져 지난 8월 회의 때보다 긴축 강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이스라엘 하마스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8월에 예측했던 물가(상승률) 하락 경로보다는 속도가 늦어지지 않겠느냐는 게 금통위원들의 중론"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하반기 들어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내년 중반께 금리 인하를 시작하고 그 이후 한은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물가가 2%대 초반으로 내려오고, 미국도 인하 조짐이 있어야 한다"며 "국내 기준금리 인하는 내년 상반기 이전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까지는 추가 인상보다는 동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 미국 등 주요국 통화 정책과 성장 경로 정도에 따라 인하 기대감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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