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너도나도 제철소 건설
철강 과잉 6년만에 최대 규모
중국 철강업체들은 지난 20여 년간 철강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려 전 세계적인 철강재 공급과잉을 초래했다. 이번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제철 자립을 기치로 내건 이들 국가가 철강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나서자 세계 철강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전 세계 철강업계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던 동남아가 제조업 육성을 기치로 산업의 쌀인 철강 생산능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면서 동남아를 수출 공략지로 삼고 있던 포스코 등에 상당한 타격이 우려된다.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철강 생산능력은 24억 5900만t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3200만t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철강 과잉 생산능력은 지난해 5억 7300만t으로 2017년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계 철강 생산능력에서 실제 철강 생산량을 뺀 숫자다. 지난해 과잉 생산능력은 전년 대비 1억800만t 늘었다.
철강 생산능력에 비해 생산량이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제철소가 과잉 건설돼 제대로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당연히 철강재 가격에도 하방 압력을 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대표 철강재인 열연가격은 2021년 t당 1000달러에 육박하다가 올해 8월에는 평균 552달러로 내려앉은 상태다.
2010년대 들어 철강재 공급과잉 문제가 전 세계 철강산업의 주요 화두가 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주요 철강업체들이 설비 증설을 자제했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묻지마 수준'으로 제철소를 건설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별로 살펴보면,
인도네시아가 2022년 1900만t에서 2030년 4600만t
말레이시아가 1600만t에서 4700만t
필리핀은 300만t에서 2400t으로 철강 생산능력이 급증할 전망이다.
지난해 전 세계 조강 생산량에서 국가별 비중은 중국이 54%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는 인도(6.6%), 미국 캐나다(5.9%), 일본(4.7%) 순이다. 동남아 국가들 생산량을 모두 합하면 7.4%에 달한다.
철강재 수입 의존도가 높던 동남아 국가들이 일제히 고로 건설에 나서자 동남아철강협회(SEAISI)는 지난 5월 "아세안 주요 6개국에서 발표한 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를 통해 확보될 철강 생산능력이 수요를 압도하면서 공급과잉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 국가의 제철 자립 움직임으로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체들의 수출 실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남아는 올 상반기 포스코 전체 수출 물량의 21%인 약 150만t을 구매한 포스코 제1 수출시장이다. 동남아 제철 자립 여파는 이미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1~8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에 대한 한국 철강재 수출량은 306만 9000t으로 전년 대비 18만 8000t 감소했다. 현지 시장에서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1년 새 18.6%에서 16.9%로 하락했다. 동남아발 철강 공급과잉 우려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남아 현지 철강업체 상당수가 중국 자본과 합작해 제철소 건설에 나선 결과라는 얘기다.
OECD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중국 철강업계는 현재 13개국에 투자하며 해외 합작법인 9곳을 세웠는데 그 중 아세안 지역에 대한 투자가 제일 많다"면서 "아세안에서 철강 생산능력은 역내 수요를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일례로 2020년 연 700만t 규모 철상 생산설비를 완공한 인도네시아 덱신철강은 중국 철강회사인 더룽그룹과 칭산그룹이 합작해 현지에 설립한 회사다. 이 회사는 수년 내 250만t 규모 추가 고로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환경규제와 자국 내 증설 투자를 제한하며 철강업계를 옥죄는 점도 중국 철강 자본이 동남아 국가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배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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