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당 오른 중도우파 국민당 보수진영 합쳐도 과반 불가
1970년대 파시즘 부활 경계 극우 '복스' 의석수 크게 줄어
7석 중도정당 '캐스팅보드' 집권 사회당도 연정 안간힘
진보에서 보수로 무난한 정권 교체가 예상됐던 스페인 하원 총선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중도우파 국민당(PP)이 제 1당으로 올라섰지만 극우 성향인 복스(Vox)가 부진한 성적을 내며 보수진영이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두 진영이 소수정당을 포섭하기 위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 정국 혼란이 불가피하다. 양측 모두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 재선거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
24일 스페인 내무부에 따르면 제1야당이었던 PP는 하원 전체 의석 350석 가운데 136석을 차지해 제 1당이 됐다.
기존 집권당인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은 122석을 확보했다. 복스는 33석을, 15개 좌파정당이 연합한 수마르(Sumar)는 31석을 획득했다. PP 복스로 대표되는 보수진영이 169석, 진보진영인 사회당 수마르가 153석을 얻으면서 양측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데 실패했다.
기존 예상을 깨고 사회당이 선전했다. 앞서 지난 5월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PP는 복스와 함께 광역자치단체 12곳 가운데 9곳을 차지하며 사회당을 압도했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진영이 180석 이상을 확보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선거 결과 윤곽이 들어났을 때 사회당을 이끄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환호했고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PP 대표는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고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여론 조사업체 분석을 인용해 "산체스 총리가 선거 막바지에 PP 복스 연합이 스페인을 2023년에서 '1973년'으로 퇴보시킨다고 경고하면서 표심을 정하지 못했던 유권자를 사로잡았다"고 분석했다. 1973년은 파시스트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 시기다. 스페인은 1975년 그의 사망 이후 민주주의로 전환했고 이후 극우 세력은 한 번도 정부에 참여하지 못했다.
양극단에 있는 정치 세력에 대해 국민이 피로감을 느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9년 총선과 비교해쓸 때 중도우파 PP와 중도좌파 사회당은 의석수가 각각 47석, 2석 증가한 반면 극우와 극좌로 분류되는 복스와 수마르는 각각 19석, 7석 줄었다.
이에 앞으로 스페인은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스페인 총리는 원내 1당 대표가 맡는데, 하원 과반(176명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이후 국왕이 총리를 임명하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문제는 두 세력이 각각 범보수, 범진보 통합에 성공해도 과반이 안된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은 PP, 복스에 CC, UPN을 더하면 171석, 진보 진영은 사회당, 수마르에 카탈루냐공화당(ERC), 바스크국가모임(EHB) 등을 포함하면 172석이다.
중도로 분류되는 카탈루냐연대당(Junts)이 '캐스팅보트'로 떠오른다. 총선에서 7석을 획득한 이 당을 포섭하는 진영은 과반이 된다. 카탈루냐연대당은 카탈루냐 분리, 독립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정당이라, 복스와 연대할 PP측에 설 가능성이 낮다. 복스는 카탈루냐 분리에 앞장서 반대하고 있다.
PP는 극우 복스를 품으면서도 중도 진보 정당에 '러브콜'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카탈루냐공화당(7석), 바스크국가모임(6석), 바스크국민당(EAJ-PNV 5석) 모두 카탈루냐나 바스크의 분리 독립 등 주권 보호를 직간접적으로 요구하는 정당으로 복스와 정반대에 서 있다. 페이호 대표는 개표 막바지 총선 승리를 선언하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정당이 정권을 잡을 수 없다면 유일한 대안은 정쟁뿐"이라고 말했다. 다수당인 PP가 정부를 구성하게 해달라는 호소다.
어느 진영이 권력을 쥐게 될지는 안갯속이다. 진보에 가까운 정당이 많다는 점이 사회당에 유리해보이지만 사회당이 이들 요구를 모두 맞춰주기는 어렵다. 일례로 카탈루냐연대당은 카탈루탸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재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산체스 총리는 PP와 복스에 반대하는 모든 정당이 그를 지지하면 연임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는 극도로 어려운 과제"라고 평가했다.
재선거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페인은 2015년 말~2016년, 2019년 총선 재선거 이력이 있다. 당시 두 진영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각각 10개월, 7개월 동안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가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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