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주의를 둘러싼 통념은 대체로 부정확하고 논란의 중심에 있다.
'아랍 국가는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이슬람은 중동 민주주의의 핵심 걸림돌이다'
'여성 인권의 증진은 중동 민주화에 필수다'
'아랍의 친서구 자유주의자는 민주화의 핵심 세력이다'
'중동 민주주의는 이슬람 테러리즘의 치료제다'
'미국은 중동 민주주의를 원한다'
'이라크전쟁은 중동 민주주의의 대의를 발전시켰다'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명제는 흑백논리로 설명할 수 없기에 이들 명제의 진의를 백분율로 나타내보는 연습이 유용하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조금 더 사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짧고 간단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 나라가 역사적으로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미국도 1964년이 돼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차별은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차별 발언을 억눌린 시민의 마음이라며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둘째, 이슬람주의 운동의 원조인 '무슬림형제단'은 부패하고 무능한 자국의 독재 타도를 핵심 목표로 삼았고, 결성 초기에는 시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슬람주의 운동은 많은 시민에게 변혁의 희망을 안겨줬으나 냉전 이후 이슬람 극단주의 진영의 '빌런'에게 뿌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셋째, 중동의 여성 인권 단체 대다수가 미국과 유럽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토착 시민단체는 이들과 연대하는 것을 꺼린다. 권위주의 정권은 이들 여성 인권 단체에 소극적인 유화책을 제시하며 서구의 압박 앞에 체면치레하는 동시에 시민사회 전체의 분열을 조장한다.
넷째, 아랍의 친서구 자유주의자 세력은 강한 엘리트주의 성향을 띠며 대중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조직한 경험이 매우 적다.
다섯째,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테러가 줄지 않으며 테러가 빈번하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은 더욱 아니다. 민주화 이행 시기에 사회가 개방되면서 오히려 일정 기간 테러가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2011년에 일어난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의 유일한 성공 사례인 튀니지가 그랬다. 권위주의 체제의 통제 시스템이 테러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지만 집권세력은 테러방지라는 공익보다는 정적 감시라는 사익 추구에 전력을 쏟는다.
여섯째,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국내 정당과 의회를 둘러싼 정치 다이내믹의 산물이며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의 핵심 기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2003년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이식했다. 그러나 전후 국가 안정화와 재건 과정에서 무차별적 종파주의를 동원함으로써 일반 시민의 반미 감정을 확산시켰고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조직인 ISIS 출현의 계기를 제공했다.
국제 NGO가 측정하는 중동 국가의 낮은 민주주의 지수에 대해 특히 걸프 산유 왕정은 불만을 보인다. 이들 왕정에 정당과 직접선거제도는 없지만 시민이 청원하고 의사결정권자가 협의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즐리스'로 불리는 전통 회의에서 통치자와 집권 엘리트가 통치 대상을 만나 고충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 보호자의 책임을 다한다고 강조한다. 정권 안정을 다지는 독특하고 덜 권위주의적인 메커니즘이다. 또 중동 시민이 민주주의를 향해 반감을 보인다는 통념이 있으나 이는 자기 대표를 직접 선출하는 기제가 아닌 강대국이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시도에 대한 불만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처럼 중동 이슬람 세계에 관한 단순하고 오류투성이의 통념을 낱낱이 파헤쳐보면 사실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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