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군사기업 PMC의 세계
30년 만에 러시아에서 발생한 쿠데타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들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의문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왜 국방부 소속 정규군이 아닌 민간 용병들을 키웠는지에 모아진다. 여기에 더해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푸틴 대통령에게 왜 내버려 뒀을까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그룹이라는 민간군사기업(PMC)의 효용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게다가 PMC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활용해 온 '보이지 않는 그림자 집단'이다.
PMC는 러시아에만 있는 형태의 집단은 아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에도 PMC가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자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PMC와 계약을 맺고 있다. 미국은 주로 보급, 의료 등 후방 지원에 PMC를 활용하지만, 전투나 정보 수집 등 핵심 분야를 맡기기도 한다. 이라크전이 대표적이다. 미군이 2011년 공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 용병과 정규군 비율은 1.25대 1로 나타났다.
PMC에 대한 각국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가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다. PMC와 계약하면 정부는 전쟁에서 군인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등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군인 연금도 지급하지 않는다. 정규군을 전투에 투입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그룹에 지난 1년 동안 약 2조5000억원의 거금을 썼다고 밝혔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정규군 운영보다 용병을 쓰는 게 돈이 덜 든다는 게 중론이다.
인구구조와 현대전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점도 최근 PMC 선호도가 상승하는 요인이다.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은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군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부족분을 용병이 메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게릴라전이 많아지고 하이브리드전 양상도 있기에 그때그때 특정 상황에 맞는 적합한 역량을 갖춘 용병들을 쓰는 추세"라고 말했다.
마켓워치가 지난 3월 공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PMC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43억 4657만달러(약266조원)으로 집계됐다. 2028년이 되면 시장 규모는 3161억 5224만달러(약 412조원)로 약 55% 증가할 전망이다. 공식 집계는 없지만 민간단체인 대테러국제용병협회(IMACT)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PMC는 170개, 종사자는 30만명으로 추산된다.
다만 러시아 소속 PMC는 다른 PMC들과 조금 성격이 다르다. 러시아는 자국의 PMC를 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는 PMC를 민간 기업으로 정식 등록하게 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러시아 PMC는 좀더 높은 자율성을 갖게 되고 불법적인 행위에도 자주 연루된다. 바그너그룹이 리투아니아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 '테러단체'로 공식 지정된 배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그너그룹 등 PMC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신뢰와 '애착'은 여기서 비롯된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PMC는 푸틴 대통령이나 러시아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움직인다. 러시아가 이권이 걸려 있지만 나서기 어려울 때 PMC가 투입되는 경향이 있다고 CSIS는 짚었다. 문제가 발생해도 러시아는 PMC와 관계를 부인하면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원자재, 자원 분야 무역에 대해 서방 국가의 제재를 받고 있는데 PMC는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
러시아 PMC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CSIS는 "러시아는 PMC를 활용해 해외 통치자들에게 안보와 경제 교류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힘을 양화시키고 러시아의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근 러시아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섭하는 모양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키기 위해, 수단은 금광보호, 서아프리카 말리 정부는 이슬람 무장 단체에 대항하기 위해 바그너그룹과 계약을 맺었다.
주러시아 대사관 공사를 지낸 박종수 전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러시아는 시리아나 아프리카 내전에 군사적 개입을 많이 했는데 이때 외교적 관점에서 정규군이 갈 수 없으니 PMC가 갔다"며 "자원이 풍부하고 러시아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국가들과 결속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PMC가 '전진기지'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의 '다극주의' 추구와 PMC의 성장이 공교롭게도 시간상 일치한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미국 등 서방국가의 제재를 받았고, 이에 미국 유럽과 사이가 애매한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국가가 주요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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