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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분기에만 4만6000명 신청, 17년만에 최대

고금리 경기침체에 서민경제 한계 상황으로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한 취약대출자가 올해 1분기에만 4만 6000명을 넘어섰다. 분기 신청자 기준으로 17년만에 최대 규모다.지난해 금리 상승 여파와 경기 침체로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개인 대출자들이 급증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에 따르면 올 1분기 채무조정을 신규로 신청한 인원은 4만 606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만 2005명)보다 44% 급증했다. 분기 신청자가 이렇게 많은 것은 신복위 출범 초기인 2005년 이후 처음이다. 

 

신복위의 채무조정은 연체 기간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으로 나뉜다. 각각 연체 30일 이하, 31일 이상 89일 이하, 연체 90일 이상일 경우 신청할 수 있다. 특히 올 들어 연체 기간이 짧은 차주들의 신청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연체율 상승과 더불어 채무조정 신청자가 더욱 늘어나는 '연체 대란'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신복위 관계자는 "작년에 급증한 이자 부담을 버티고 버티다 올해부터 연체 위기에 처한 분들, 연체가 시작되고 신용점수가 급락하며 자금 상황이 악화돼 채무조정을 찾는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연체 전이나 연체 30일 이하일 때 이용할 수 있는 '신속채무조정'은 1분기에만 1만 338명이 신청했다. 2021년까지만 해도 분기당 2000~4000명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청자가 급증했다. 지낸해 9월 시작된 새출발기금과 신속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으로 신청 대상자가 확대된 영향이다. 연체 31일 이상 89일 이하일 때 신청하는 '프리워크아웃'은 올 1분기 신청자가 1만 945명에 달했다. 전년 동기(5993명) 대비 두 배 수준이다. 프리워크아웃은 연체 이자를 면제해주고 이자율을 최고 연 8%로 조정해준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가중되자 한 달 이상 연체한 차주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연체 90일 이상인 차주가 대상인 '개인워크아웃'의 신청자는 올해 1분기 2만4874명을 전년 동기 대비 10% 늘었다. 상대적으로 증가율이 낮은 편이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코로나19가 시작된 첫해였던 2020년 한때 분기당 2만 60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30일 이하 연체자가 연체 31일 이상의 프리워크아웃이나 연체 90일을 넘긴 개인워크아웃대상자로 옮겨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어요. 조금이라도 빨리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계속 대출을 받아 쏟아부었는데 결국 폐업하면서 6600만 원 빚만 남았어요. 돌려막기로 몇 년간 버텨봤지만 당장 생활비도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개인회생을 택했겠어요."

 

충북 청주에서 디저트 가게를 운영했던 40대 김 모씨는 지난 2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었고, 저축은행과 카드사 대출까지 받아 버텼지만 결국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새 직장을 구했지만 적은 월급으로 원리금을 상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불어난 이자 때문에 현금서비스(단기 카드대출)를 수차례 받던 김씨는 가족, 친구에게 손을 벌리다 못해 개인회생으로 빚을 변제받기로 했다. 

 

프리랜서인 30대 한 모씨는 2021년 아버지의 채무 변제를 돕기 위해 2금융권 대출을 받았다가 함께 한계 상황으로 내몰린 케이스다. 그는 "끼니를 거를 만큼 생활비가 부족했다. 연체와 동시에 추심이 시작돼 괴로웠는데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한 후 큰 부담은 덜었다"면서 "이자율 조정도 받고 매달 빚을 조금씩 갚아 갈 수 있게 돼 재기의 희망이 일단 생겼다"고 말했다. 

 

전체 금융권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부터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연체율 후행지표로 불리는 개인회생 채무조정 신청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 1일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개인회생 신청자는 올해 1분기 3만 182명으로 전년 동기(2만 428명) 대비 48%나 증가했다. 대출 원리금 일부를 변제받고 분할 상황한다는 점에서 개인회생과 비슷한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신규 신청자도 올해 1분기 4만 6067명이나 된다. 개인회생 신청자까지 고려하면 1분기에만 7만 6249명이 본인의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제도적 도움을 요청한 셈이다. 개인회생과 채무조정 모두 올 3월에 신청자가 급격히 증가했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개인회생 채무조정 신처자가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누적된 대출에 금리 상승 부담까지 더해져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한계 대출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취약 차주가 많은 2금융권의 연체율은 이미 치솟고 있다. 올해 1분기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총여신 연체율은 5.1%로 전년 말(3.4%)에 비해 1.7%포인트 올랐다. 7개 전업카드사(KB국민, 신한, 삼성, 현대, 롯데, 하나, BC카드)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도 지난해 말 기준 1조 4306억 원으로 전년 동기(1조 1850억 원) 대비 21% 늘었다. 

 

대출을 대출로 막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취약차주도 늘었다.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불법사채라도 빌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금융 이용자 중 1238명이 불법 채권추심과 최고금리 초과 이자율 부과와 같은 피해를 입고 금융당국에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을 신청했다. 2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벼랑 끝 대출자가 늘면서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을 통해 공급되는 정책대출도 점점 더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서금원은 '햇살론15'을 받지 못하는 취약차주를 위해 지난해 9월 '최저신용자 특례보증'을 출시했다. 하지만 이 상품도 소득이 있어야 해서 못 받는 사람이 많았다. 금융당국은 소득 증명이 어려운 사람들도 포용하기 위해 지난 3월 서금원이 직접 대출하는 형식의 '소액생계비대출(100만 원 한도)'을 출시했다. 

 

취약 대출자들의 자금난에 정책자금 상품 한도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서금원에 따르면 청년을 대상으로 공급하는 정책대출상품인 '햇살론유스'의 올해 목표 공급액은 당초 100억 원이었지만 이 중 80% 이상이 1분기에 소진됐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햇살론유스 공급 규모를 1000억 원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출시돼 '예약 오픈런'을 방불케 했던 소액생계비대출도 개시 한 달 만에 2만 3532명에게 143억원이 대출됐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640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자영업자 대출 연체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해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상환을 유예해줬다. 

 

그러나 오는 9월 만기연장 상환유예 조치가 끝나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가 급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양정숙 무소속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은 1019조8000억 원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 중 71%에 달하는 720조 원이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이며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1인당 평균 대출액은 4억 2000만 원 수준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상승으로 인한 원리금 증가, 고물가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자산가격 하락 등 삼중고로 차주들의 부담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며 "만기연장 상환유예 조처를 올 9월에 종료하면 가계 위험은 물론 금융기관들의 위험도 증가될 수 있어 정책적 일정을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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