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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을 둘러싼 세대전쟁

 

"국민연금 차라리 덜 받아도 좋습니다"

 

지난 3월 비정부기구(NGO) 연구기관인 K정책플랫폼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대학원생 14명에게 소득대체율 30%와 40%를 두고 무엇을 선호하는지 물었는데요. 소득대체율이란 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의 비율을 말합니다. 

 

소득대체율 30% 안을 찬성한 청년이 처음엔 14명 중 9명이었는데 전문가 토론 이후 12명으로 되레 늘었습니다. 자기가 받는 액수가 줄어드는데도 말이죠. 청년층은 왜 소득대체율을 낮추자고 주장한 것일까요? 박진 K정책플랫폼 공동원장은 "청년층은 자신이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30~40년 후보다는 당장 내야 할 보험료에 부담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와 정반대인 MZ세대 인식

 

정부는 현재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현행 보험료율을 최대 2배(9% > 12~18%)로 올리고 수급 개시 연령 역시 65세에서 66~68세로 늦추는 겁니다. 기금운용 수익률을 현행 대비 높이겠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습니다. 

 

만일 개혁안이 제대로 진행될 경우 국민연금 고갈 시점(2055년)을 한참 뒤로 늦출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입니다. 그러면 현재 MZ세대가 은퇴할 2050~2060년에도 이들은 국민연금 수혜를 충분히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앞으로 20~30년 더 일해야 할 MZ세대 대다수는 앞서 말한 K정책플랫폼에서처럼 "차라리 소득대체율을 낮추자"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현재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고령층의 고통 분담이 정부안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도리어 소득대체율을 45%, 50%로 늘리는 안도 검토했는데요. 최근에 아이를 가진 30대 대기업 직장인 최 모씨는 "국민연금요율을 높여도, 고갈 시점을 늦춘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우리 아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건 똑같지 않냐"며 "차라리 사적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할 테니 국민연금을 덜 걷거나 아예 안 걷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청년층이 이같이 주장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청년층에선 맞벌이가 흔합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74만2000원입니다. 375만원이라고 보고 소득대체율 40%를 적용하면 노후에 국민연금 월 150만원을 수령합니다. 국민연금연구원에서 2019년 설문조사를 통해 발표한 적정 노후생활비(월 268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죠.

 

반면 청년층은 소득대체율이 30%로 낮아져도 맞벌이기 때문에 실제 노부부가 수령하는 액수는 고령층보다 높아집니다. 월평균 임금 375만원에 30%의 소득대체율을 곱하면 한 사람당 수령액은 약 112만원이고, 2명이 이를 수령하면 약 224만원입니다. 여기에 직장에서 가입하는 퇴직연금 등을 더하면 적정 노후생활비를 무난히 달성할 수 있죠. 

 

소득대체율을 현행처럼 가져가거나 혹은 높일 필요가 맞벌이 MZ세대 직장인에게는 없는 겁니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30대 김 모씨는 "국민연금에 내 돈을 떼이느니 차라리 연금저축계좌를 적립식으로 붓는 게 수익성이 좋아 보인다"며 소득대체율 인하에 찬성했습니다. 청년층의 요지를 살펴보면 국민연금 요율을 올리기보다는 차라리 소득대체율 인하를 통해 지출을 줄여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자는 여론이 큰 겁니다. 

 

 

전문가들도 소득대체율 인하 필요성 공감

 

전문가들도 국민연금 개혁안 논의에서 소득대체율 인하가 빠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은 세대 간 자원 배분 문제"라며 "2028년까지 40%로 하향하기로 한 명목 소득대체율을 36%로 추가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학회는 국민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올해 초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총 47명이 응답했는데요. 기여율 인상(요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근 30%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들 경제학자도 국민연금 개혁안이 필요한 주된 이유가 "미래 세대 부담이 커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죠. 

 

실제로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이래 연금 개혁은 두 차례 진행됐습니다. 

 

1998년 제 1차 연금 개혁의 주요 내용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인하하고 수급 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높이는 것입니다. 제1차 연금 개혁의 특징은 다른 이해집단보다 정부가 주도한 연금 개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국민연금이 1988년에 도입돼 1990년대 중반까지 제도의 가입자와 수급자 규모가 매우 작아 국민이 제도 개혁에 관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2007년 제2차 연금 개혁이 실시됐는데 주요 내용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인하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소득대체율은 42.5%이고 앞으로 2028년까지 40%로 낮아질 예정이죠. 

 

당장 시민단체에선 반발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대비 3배에 달하는 노인 빈곤율을 무시하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면 안 도니다는 주장인데요, 실제로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현재 62만원에 불과해 적정 노후생활비를 크게 하회하고 있죠. 다만 다른 각도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 있습니다. 우선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낮은 것은 그만큼 국민연금을 덜 납부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30년간 납입한 사람들의 평균 수령액은 157만2156원으로 평균 연금 수령액(62만원) 대비 높습니다. 

 

예상연금 급여 총액을 납부예정 보험료 총액으로 나눈 수익비란 개념이 있습니다. 1940년대생은 수익비가 7배, 베이비부머 세대는 수익비가 4배에 달하죠.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62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월평균 15만원만 국민연금으로 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수익비는 고령화 사회가 지속되면서 점점 낮아지게 돼 있는데요. 최근 태어난 2020년생들의 수익비는 1배에도 못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납입액도 못 받는 사태가 발새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 교수는 "현재도 고령층은 낸 것 대비 훨씬 많이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있다"며 "기초연금 등 대체 수단이 있는 만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더 줄이는 쪽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노인 빈곤율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통계의 함정이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령층 자산 70~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는데, 부동산 같은 자산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란 것이죠.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부동산 자산 상태 등을 포함해 다시 노인 빈곤율을 계산했더니 노인 빈곤율이 21%로 떨어졌습니다. 

 

 

소득대체율 인하안도 검토해

 

지난 2차례 개혁안(1998년, 2007년) 모두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안을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에선 이 부분이 빠져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 정부안 중 중간안처럼 국민연금 요율을 15%로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근로자가 내야 할 4대 보험료(건강보험료도 법정 상한선인 8%까지 올린다는 가정)는 현행 9.39%(임금 대비)에서 12.9%로 올라갑니다. 

 

월 400만원을 계약한 근로자는 현재 4대 보험료를 떼면 362만원(세전 임금)을 받아 갑니다. 4대 보험료가 위와 같이 올라갈 경우 세전임금은 362만원에서 348만원으로 줄어듭니다. 4대 보험료율 인상에 따른 실질 임금 하락효과는 4%에 달합니다. 

 

올해 상반기 근로자 1인당 실질임금은 355만8000원으로 지난해 대비 1.5% 하락했죠.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이 그만큼 상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향숙 고용부 노동시장조사 과장은 "상반기 실질임금 하락은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국민연금 요율을 높이는 안에만 집중하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것을 빼버린다면 주로 국민연금을 납부하게 될 MZ세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소득대체율 인하를 다시 고려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국 아일랜드는 우리 수준으로만 걷어

 

국민연금 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OECD국가들이 임금 대비 평균 18%를 걷어간다는 사실을 근거로, 우리나라 국민연금(임금 대비 9%)이 적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국민연금을 임금 대비 18% 또는 그 이상 걷는 국가가 많습니다. 프랑스(27.8%), 독일(18.6%), 일본(18.3%) 등이 이에 해당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의 국민연금인 '노령유족연금 신탁기금(OASI: Trust funds for Old-age and Survivors Insurance)'은 근로자와 사업주에게 각각 임금의 5.3%를 걷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요율(근로자와 사업주 각각 4.5%)과 거의 비슷합니다.

 

유럽에서 그나마 성장하고 있는 아일랜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일랜드는 사회보험료로 걷는 총 비율이 임금 대비 15.1%이고, 근로자가 4.0%, 사업주가 11.05%를 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근로자가 9.39%, 사업주가 10.06%, 도합 19.99%를 내는 것을 감안하면, 근로자에게선 우리나라 대비 절반만 걷는 셈입니다. 아일랜드 법인세는 12.5%로 우리나라 대비 절반이죠. 사업주, 근로자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는 게 아일랜드 시스템입니다. 

 

올해 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선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죠. 미국과유럽의 실질 국내총생산 격차가 2000년대 이후 커지고 있다는 점, 유럽이 고령화와 산업 경쟁력 도태로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발생시킨 요인 중 하나가 연금입니다. 고령화 시대에 맞게 유럽 모델로 간다면 가뜩이나 잠재성장률이 곧 0%까지 추락할 국내 경제에 꽤 큰 비용 부담이 될 것입니다. 

 

 

재산세 감면 등 여러 정책 믹스해야

 

결국 중요한 건 현재 나가는 지출을 줄이는 겁니다. 그 핵심 중 하나는 소득대체율을 더 낮춰서 현재 받는 국민연금액을 줄이는 것입니다. 청년층뿐만 아니라 고령층도 똑같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겁니다. 

 

연금 실질 수령액은 줄지만 고령자 주거비 부담을 낮추면 어느 정도 타협안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캘리포니아는 고령자(55세 이상)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더 가격이 낮은 집으로 이사할 경우, 재산세를 기존 주택 매입가(캘리포니아는 주택 매입가가 보유세의 기준입니다)에 한해서만 내게끔 하는 제도를 운영 중입니다. 2억원에 주택을 사서 10억원에 팔고 8억원짜리 집으로 이사하면 2억원분에 대해서만 재산세를 내는 것이죠. 우리는 제도가 같지 않아서 똑같이 시행할 순 없겠으나 종합부동산세와 같이 재산세에도 '고령자 공제'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최근 1주택 고령자에 한해 재산세를 30% 감면하자는 안을 요청한 바 있죠. 

 

이 밖에 빈집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의 빈집은 근 140만가구에 달합니다. 주거지가 없는 노인이 빈집에 정착할 수 있게끔 하면서 주거비 부담을 낮춰줘야 합니다. 

 

기초연금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사회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낮추면서 동시에 여러 보완 대책을 마련해 노인의 실질소득을 높이는 방안으로 정책을 짜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 이 글은 경제공부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무단복제나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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