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나라의 국민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싼값에 살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국제무역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도 함께 내놨다. 그의 아이디어는 훗날 데이비드 리카도, 엘리 헤크셰르, 베르틸 올린은 물론 폴 크루그먼, 마크 멜리츠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을 통해 경제 모형으로 발전했고 현실에도 적용됐다. 올해로 탄생 300주년을 맞은 스미스는 현재의 국제무역 질서를 어떻게 생각할까.
스미스가 국부론에 쓴 국제무역과 관련한 내용은 매우 구체적으로 현실적이다. 먼저 국가가 무역을 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소비'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영국은 옷값이 싸고 포르투칼은 포도주가 싸다. 이때 두 나라가 인적 물적 자원을 싼 물건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서로 교환한다면 두 나라 국민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소비를 할 수 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 논리는 누가 봐도 반박할 수 없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라고 했다. 훗날 경제학자들은 이를 '무역의 이익'이라고 불렀다. 국가가 무역장벽을 없앨수록 자원은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누리는 무역의 이익은 커진다.
스미스는 이처럼 '당연한' 이야기가 현실에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도 설명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소비자와 상인 제조업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이 포도주를 포르투칼에서 싼 값에 수입해 공급하면 영국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포도주를 더이상 팔 수 없어 피해를 본다. 이 때문에 자유로운 무역에 반대한다. 스미스는 "상인과 제조업자들은 국민들의 이익 증대라는 보편적인 상식보다는 각종 궤변(sophistry)으로 국가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려고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관세를 비롯한 각종 보호무역 조치가 나온다. 스미스는 자유무역의 이상과 보호무역의 현실을 정확히 봤다. 스미스가 보호무역의 예로 꼽은 것은 수입 제한, 수출장려금, 자국에 유리한 통상협정, 식민지 획득 등이다.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보호무역의 정치화'라는 이론으로 발전한다. 진 그로스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가 내 이익집단과 정치세력 간의 거래를 통해 보호무역이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해외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내 기업들이 로비를 통해 정치인을 매수하고 정치세력은 이를 받아들여 관세 인상과 수입 장벽 강화 등의 보호무역 정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성향이 다양하고 정치적으로 분산돼 있어 조직적으로 로비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줄 알면서도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는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무역장벽이 만들어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도 국부론에 있다. 스미스는 "상대국의 관세를 낮추기 위한 목적의 보복관세는 국가의 무역정책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상대국이 높은 관세를 매기는데 자국만 관세를 내리면 수출은 안되고 수입만 늘어나 손해를 본다. 국제무역에서는 이처럼 한쪽이 관세를 올리면 따라 올리고 관세를 내리면 따라 내리는 상호주의(reciprocity) 원칙이 적용된다. 상호주의를 넘어선 정치적 목적의 무역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 경계해야 한다.
스미스는 경제보다 국가 안보가 우선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국가의 안보를 위협할 때는 무역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17세기 영국이 자국 또는 식민지의 배만 영연방 국가에 입항하는 것을 허용한 '항해조례'를 두둔했다. 이는 영국이 당시 무역 강국인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다. 스미스는 또 정부의 보조금 지급은 반대했지만 고래잡이 어선인 포경선에 대한 장려금은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전쟁을 대비한 조치다. 스미스가 보호무역을 내세운 것은 이처럼 전쟁이 발발할 만한 긴박한 상황에서다. 17세기 당시 네덜란드는 영국의 항해조례에 강력 반발했고 결국 두 나라는 전쟁을 벌였다.
스미스의 아이디어는 현대 무역질서에서도 적용된다. 1944년 만들어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이를 계승해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도 스미스의 무역원칙을 받아들였다. WTO와 GATT는 모든 무역장벽을 관세로 투명하게 바꾸고 수입품과 관련한 관세를 점진적으로 내려 각국 소비자들의 편익을 늘리는 것을 대원칙으로 했다. 회원국 모두 특정 국가에 대해 관세나 수입 제한 등 차별도 금지하도록 햇다. 상호주의 원칙도 적용된다.
WTO는 특정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물건을 관도하게 싸게 팔 때는 상계관세와 반덤핑관세 등을 통해 이에 상응하는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 안보가 위협을 받을 정도의 큰 충격이 발생할 경우 '세이프가드' 조치를 통해 한시적으로 WTO 무역협정 범위를 넘어서는 높은 관세와 수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항도 만들었다.
이 같은 무역질서는 21세기 들어 파괴되고 있다. WTO 설립 초창기에는 미국의 리더십이 작동했고 '자유무역 확대를 통한 모든 국가의 이익 증대'에 대한 공감대도 있었다. 또 무역 자유화와 관련한 이슈도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적 요인들이 불거지면서 국가 내부 또는 국가 간 갈등이 커졌다. 농산물을 포함해 각종 업종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관세 인하를 요구하는 선진국과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운 개도국 간 견해차도 벌어졌다. 제조업을 넘어 각종 서비스업과 국가간 지식재산권 문제 등 무역 이슈가 복잡해진 점도 WTO를 위축시켰다. WTO를 이끌어왔던 미국의 리더십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WTO는 2001년부터 진행된 국가 간 무역협상인 도하라운드가 실패로 끝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대결이 한층 심화되고 있는 점도 국제 무역질서를 해치는 원인이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은 자유화된 세계무역질서에 편승해 수출을 대폭 늘리면서 경제성장을 이뤘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무역질서에 합류했지만 중국 내부에서 정부의 시장개입과 국내외 기업 간 차별 정책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실제 중국은 자국 산업에 대한 부당한 보조금 지급으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보복 관세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로 꼽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2023 무역장벽보고서'도 중국의 불공정 무역 제한 조치를 고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여전히 국가 주도 보조금 지급과 각종 규제를 통해 외국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해외 기술 탈취를 위해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에 기술이전을 강요하고 중국 정부가 부당하게 자국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합병을 지원한 사례도 발견됐다. 아울러 해외 상업용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대한 사이버 침입도 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원인은 중국이 제공했지만 중국을 응징하려는 미국의 행태도 스미스의 자유무역 원칙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미국 내 생산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명문화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 생산 기업이 중국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의 부품을 사용할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일방적으로 제외하기로 했다. 보조금 지급은 물론 그 기준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은 국가 간 '차별 금지'를 명시하는 WTO 원칙에 맞지 않는다. 미국은 또 대만, 일본, 한국이 참여하는 반도체 4국 협력체계(Chip4동맹)를 만들어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더해 일본, 한국, 인도 등 아시아 14개 국가와 함께 인도, 태형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만들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시키려는 정책도 추진 중이다.
중국이 무역질서를 훼손한 측면에 대한 보복은 필요하다. 하지만 '상호주의'원칙을 넘어서 정치 외교력까지 동원한 보복은 힘에 의존하는 전근대적인 행태다. 이런 식의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고 결국 많은 나라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특히 미중 양대 강국이 나서서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국가들을 줄 세우기하는 식으로 세를 과시하는 것은 자유무역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정책에 대해 유럽과 일본 등을 비롯한 여러 아시아 국가까지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은 중국의 자유무역 원칙 훼손으로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이고 광범위한 보복 조치로 인해 또 한 번의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글로벌 무역질서는어떻게 흘러갈까. 미중 간 패권전쟁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조짐이다. 그렇다고 실리를 추구하는 경제가 미중 간 패권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지도 않을 것 같다. 미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미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총 6906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같은 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규모도 3829억달러로 2018년 (4192억달러) 이후 가장 많았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에 대한 무역장벽을 더욱 높였지만 교역량이 늘어나고 적자 규모도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 와중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찾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JP모건 회장 등 내로라하는 미국 기업인들도 중국을 방문해 대중국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앞에서는 윽박지르면서도 뒤에서는 어르고 달래는 양상이다. 미국의 무역정책도 중국과 관계를 끊는 '디커플링'에서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줄이는 '디리스킹'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고서는 미국 경제를 지탱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도 분위기를 정확히 읽어야 하는 시점이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봐서는 현실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애덤 스미스는 300년 전에 국제무역을 통해 각국이 서로 이익이 되는 공간을 찾는 법을 보여줬다. 하지만 2023년 각국은 서로 손해가 되는 구석을 찾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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